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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기] [최우수상] 나를 치유해주는 행복했던 나눔의 기억 - 이지현 작성일 2021-08-27 09:56
글쓴이 KMDP 조회수 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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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입니다.


<2021 조혈모세포 기증 인식개선 공모전>에서 수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지현 님의 <나를 치유해주는 행복했던 나눔의 기억> 입니다.


■ 수기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 기증자 이지현 (2014년 2월 기증)

■ 작품명 : 나를 치유해주는 행복했던 나눔의 기억

■ 작품 설명 : 조혈모세포 기증신청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존재만으로도 서로 힘이 되는 소중한 인연.


나를 치유해주는 행복했던 나눔의 기억


꽤 오래전이었는데도 그날의 기억은 정말 생생합니다. 그날은 정말 완벽한 날이었습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나름의 안식년을 갖기로 하고 쉬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맘껏 시작한지 두 달 쯤 되던 날이었습니다.


햇살과 바람이 적당했고, 평일 낮의 공원은 평화로웠습니다. 저는 벤치에 앉아 새로 장만한지 얼마 안 된 전자책을 꺼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의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에 더이상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싶을때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모르는 번호라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전화가 끊겼고 곧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연락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와. 세상에. 정말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온거야? 저는 너무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그 문자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헌혈에 취미를 갖게 되면서 주기적으로 헌혈의 집에 다니던 어느날, 전자 문진 후 잠시 소파에 앉아 대기하던 중 벽에 붙어있던 조혈모세포기증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는건가? 저건 어떻게 신청하는거지? 아픈건 아닐까? 부작용은 없나? 여러 가지 의문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괜히 물어봤다가 얼떨결에 신청하게 될까봐 차마 묻지 못하고 궁금증을 묻어둔 채 그날은 그냥 헌혈만 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저는 헌혈의 집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딱 두 달간 매일매일 몇 시간씩 검색을 하고 여러 자료와 후기를 찾아보며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의외로 회사 동료 중에서도 기증 신청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거 신청한지 몇 년 됐는데 연락은 아직까지 않오는 거 보니 맞는 대상자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신청하면 기념품도 많이 줘서 좋았다”는 자랑까지 들었죠. 


다음 헌혈주기 즈음에 저는 결국 용기 내어 기증신청을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항상 가던 헌혈의집인데 막상 말을 꺼내려니 뭔가 부끄러운 마음에 어색어색 쭈뼛쭈뼛하다가 피검사가 끝나고 철분 수치가 정말 좋다고 칭찬을 받은 후, 헌혈 절차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저 조혈모세포기증도 같이.."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간호사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기증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이미 두 달간 보고 또 보고 거의 외우다 시피 했던 익숙한 내용이라 설명해주시는 모든 내용을 바로 다 이해할 수 있어 좀 뿌듯했습니다. 역시나 직장 동료에게 들었던대로 헌혈의 집에 있던 모든 기념품을 다 모아서 가져다 주신 듯 한아름 기념품도 챙겨주셨고요. 


헌혈하면서 조그만 팩에 조금 더 혈액을 빼는 걸로 절차는 끝. 너무 두근두근하고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헌혈 후 소파에 앉아 쉬는 동안 헌혈의집 간호사님들이 정말 큰 결심 잘해주셨다고 모두 나와서 한마디씩 칭찬해주시는데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내 나에겐 언제쯤 기증 연락이 올까 설레며 기다려왔던 것입니다. 


그때 그날의 즐거웠던 기억이 이제 바로 2년 전인데, 바로 그 기다렸던 연락을 이렇게 빨리 받다니 나는 너무 운이 좋은 사람이잖아! 더 이상 완벽한 순간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부재중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고 곧 담당자 분이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기증할 수 있는 맞는 분이 있는데 아직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지, 그리고 가족과도 상의가 된 건지 물으시더군요. 저는 너무 흥분한 상태로 전혀 바뀌지 않았고 가족과 상의할 시간도 안주셔도 되니 바로 진행해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니라고 꼭 가족들과 다시 상의해보시라며 며칠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릴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 해내고 마는 고집 센 아이였던 터라 부모님은 썩 내키진 않지만 반대한다고 안할 녀석도 아니라는 걸 아시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매우 탐탁지 않지만 정 네 생각이 그렇다면 알아서 잘 하고 오라고 하셨지요. 입원 전날까지 진짜 꼭 해야되냐고 안하면 안되냐고도 몇 번 말씀 하셨지만 제 고집을 꺽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신나게 입원 짐을 싸고 있는걸 보면서 결국 포기하셨습니다. 진짜 건강에 문제 없는거 맞냐는 부모님의 말에, "평소 건강염려증이 있던 내가 선택한거면 진짜 괜찮은거니까 믿으셔도 된다"고 대답했고 그걸로 더 이상 걱정조차 안하기로 부모님과 합의했습니다. 


입원 전날까지는 여러 절차가 있었습니다. 담당자분과 직접 만나서 다시한번 혈액 채취를 했고, 한국인 30대 남자분께 기증되는거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기증관련된 자료를 정리한 파일을 주시며 잘 읽어보라고 하셨고, 저는 그걸 수백 번은 정독했던것 같습니다. 중간에 병원가서 피 검사도 하고 입원직전에는 퀵으로 주사약을 받아서 인근 병원에서 하나씩 맞으러 가는 절차도 있었습니다. 연계된 병원으로 가서 주사맞을때마다 좋은 일 하신다며 덕담도 많이 들었고요. 그동안 읽었던 후기에서는 이 주사약이 그렇게 아프다던데, 저는 주사 맞고나서 바로 타이레놀 한알이면 전혀 통증도 아무 느낌도 없더군요. 


다시는 없을 기회인데 어떤 식으로 아픈 건지 너무나 궁금해서 한번은 주사를 맞고 약을 안먹고 어떻게 아픈건지 한번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이놈의 호기심) 크고 뭉툭한 큰 망치로 골반뼈를 심박에 맞춰서 쿵쿵 때리는 느낌이 들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때리는 강도는 커지구요. 그런 묘한 통증은 처음이라 '오오. 이런 느낌이구나!' 라고 신기해 하다가 곧 엄청난 것이 올 것 같은 느낌에 한두 시간 정도 통증을 느껴보다가 타이레놀을 먹었고 금방 통증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모든 할 수 있는 경험도 다 했고 이제 입원만 남겨놓은 아침. 얼마나 신나던지요. 연락받은 후부터 입원하던 날까지 몸관리 한다고 정말 열심이었거든요. 평소 잘 먹지도 않던 과일과 채소, 그리고 물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닭가슴살과 달걀같은 단백질도 잘 챙겨먹고 운동으로 체력도 강화시킨다고 마침 해보고 싶었던 발레 학원을 끊어서 다니면서 막대기 같던 뻣뻣한 몸으로 90도도 안펴지던 다리가 90도 이상 펴지게 될 때 쯤 입원할 날이 드디어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병원 가는길에 예쁜 모습으로 기증하려고 마스크팩도 사고 (이상한 논리지만) 심심할 때 읽을 책도 챙겨갔습니다. 이런 귀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원을 했습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입원이란 걸 해봤는데 1인실은 넓고 여유롭고 평화롭고 편안하더군요. 시간마다 와서 챙겨주시는 의료진 분들도 너무 친절하게 좋은 일 하신다며 격려해주셨고요. 병원 밥은 맛없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밥은 또 왤케 맛있던지요. 뭔가 설레는 마음에 첫날 늦게 잤는데도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새벽부터 씻고 기다렸습니다. 


마침 또 원래 시간보다 앞당겨져서 커다란 기계가 제 방에 아침부터 들어와서 세팅이 되고 드디어 양쪽 팔에 바늘 꽂고 시작. 항응고제에 약간 부작용이 와서 부작용 가라앉히는 약까지 같이 넣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열심히 작은 고무공을 쥐고 잼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시간 쯤 지나면서 너무 졸려서 졸 때마다 기계가 삑삑 소리를 내면서 깨워주고 깨워주고 나중에는 졸면서 꿈까지 꿀정도로 너무 졸아서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원래 잠이 많은데다가.. 조용한 병실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옆에서 기계가 내는 규칙적인 소리에 잠들기 너무 좋은 조건이라 그랬나봅니다. 


그렇게 졸다 깨다 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기증을 끝냈습니다. 기계들과 의료진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이제 자야지 하고 누웠더니 그제서야 잠이 달아나고 말똥말똥해지는 기적. 텔레비전도 보고 누워서 멍도 때리고 유유자적 종일 뒹굴뒹굴 쉬기도 하고, 코디네이터분이 심심하지 말라고 사다주신 산더미 같은 간식을 (진짜 엄청나게 테이블에 쌓아둘 정도로 많이 가져다 주심) 감사히 먹으면서 책도 보고 마스크팩도 하고 발레 스트레칭도 하고 그러면서 그날 하루를 알차게 보냈습니다. 병원 밥은 또 왜 그렇게 맛있게 많이 잘나오는지, 매 끼니마다 밥 나오는 걸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렸는데, 집에서 보다 더 잘 먹고 있다고 그제서야 마음을 놓으시더군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제 기증한 조혈모세포는 잘 채취되어서 전달됐고 약간 양이 부족하다고 해서 아침에 다시 조금 더 기증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졸지 않으리라 속으로 노래도 부르고 벽이랑 천장 얼룩 같은걸 세면서 열심히 잼잼. 확실히 두 번째 하는 거라고 이제 뭔가 익숙한 느낌에 첫 날보다 더 원활히 잼잼도 하고 빠르게 진행된 느낌적인 느낌.


그렇게 저의 모든 기증 절차는 끝났고 점심 때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자분이 세심하게 잘 챙겨주시고, 감사하게도 직접 제가 차 타러 가는 길까지 배웅해주셨고요. 저는 지하철 타고 집에 와서 낮잠 자고 일어나니 저녁 때가 되어 가족들이 다 와있더군요. 가족들에게 개선장군이 무용담 자랑하듯 기 증절차를 신나게 얘기했고, 저렇게 떠드는 거 보니 진짜 괜찮긴 한가보다며 가족들도 완전히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이식 받으신 분께 잘 생착되어서 이제 곧 퇴원하시고 앞으로는 통원 치료받기로 했다면서 담당자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어머 잘됐네요.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제가 왜 울컥하던지요.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이후, 제가 기증자였다는 것 조차 잊고 지낼 때 쯤 다시 한 번 담당자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이식 받으신 분은 통원 치료도 다 끝나셨고, 완전히 건강해지셨다고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울컥하면서 엄청 눈물났던 기억이 나네요. 전화 끊고 진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글쓰면서 글썽.


사실 저는 제 일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나눔을 할 수 있어 부담없이 신청한 거였고, 연락을 받았을 때는 아무나 경험하기 힘든 특별하고 뜻 깊은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음식과 운동으로 관리하면서 헌혈하듯이 가볍게 생각하고 신나게 다녀온  것 뿐인데,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엄청난 무게감이 그때서야 가슴 속에 훅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함과 소중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스러움이 그때서야 제 안에서 넘쳐흘러 눈물이 되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워낙 시간이 지나서 그때의 일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증 신청할 때의 쭈뼛함, 그리고 기증자가 될 수 있다는 연락을 받던 유난히 완벽했던 그날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식 받으신 분이 건강해졌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의 그 눈물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제가 기증자였다는 건 이제 연말에 달력과 책자를 받을 때 혹은 가끔 기증자 대상 이벤트 문자를 받을 때 한 번씩 떠올려보는 추억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얼마전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에 집안 정리를 하다 구석에 잘 모셔져 있던 기증자에게 주는 감사패 박스를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박스 안에 고이 잠자고 있던 그 감사패를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습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감사패를 보면서 이번엔 오히려 제가 많은 에너지와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힘들 때 마다 감사패 위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햇살을 보면서 큰 치유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서로 사랑과 격려를 주고 받으면서 균형을 유지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