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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기] [우수상] 초코파이 - 신원우 작성일 2021-08-27 09:54
글쓴이 KMDP 조회수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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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입니다.


<2021 조혈모세포 기증 인식개선 공모전>에서 수기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신원우 님의 <초코파이> 입니다.



■ 수기 부문, 우수상 수상작

■ 기증자 신원우 (2016년 8월, 2017년 5월 기증)

■ 작품명 : 초코파이

■ 작품 설명 : 단순히 초코파이가 먹고 싶어서 기증희망등록을 했으나, 이후 기증을 하게 되며 나의 생각과 삶이 어떻게 변햇는지 보여주는 글


초코파이


아직도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었던 그날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면서도 운명적인 선택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군인일 당시 헌혈을 하면 포인트를 지급하여 휴가를 늘리는데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고, 하루라도 더 바깥공기를 쐬고 싶은 마음에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을 약간 더하여 군 복무 시절 내내 열심히 헌혈을 하였다. 


전역을 얼마 안남기고 외출한 그날은 여러모로 운명적인 날이었던 것 같다.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친구는 일이 생겨 늦게 영화만 같이 보기로 하였고, 친구의 늦는다는 전화를 받는 내 앞에는 헌혈의 집이 있었다. 마침 헌혈을 한번만 더하면 나의 화려한 말년 휴가가 하루 더 늘어나는 상황에 나는 망설임 없이 헌혈을 하며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헌혈을 하는 동안 점심을 놓쳐서 허기진 나에게 담당 간호사님이 그날따라 유난히 달콤해 보였던 초코파이 두 개와 영화티켓을 가져오시며,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서류를 작성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간호사님이 많은 설명을 하셨던 것 같은데 내 눈은 초코파이에 고정되어 머리속에는 빨리 설명이 끝나고 초코파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초코파이를 두 개나 먹고 만족한 나는 잠시 그날을 잊은 채 전역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생생하게 돌아온 건, 3년 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인턴으로 취직을 했을 무렵이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로부터 기증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았고 3년 전 초코파이에 정신이 팔려 간호사님의 설명을 경청하지 않았던 나는 그제서야 조혈모세포와 기증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었다. 


2만분의 1의 확률로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야 기증이 이뤄지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잘 몰라 기증희망등록을 하지 않았고,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더라도 가족이나 주변에서 잘못된 인식(내가 기증할 때도 주변에서 그러다 백혈병 걸리는 것 아니냐는 헛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으로 기증을 만류하여 기증을 못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아마 기증까지 이뤄질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조혈모세포 기증도 헌혈과 마찬가지로 팔의 혈관을 통해 추출하여 기증하는 형태로 거부감도 없었기에(차이가 있다면 20분과, 4시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다) 나는 흔쾌히 기증 절차를 진행했다. 타이밍도 절묘하여 나의 인턴이 끝나고 정규직 채용 전 약 한달 공백기간에 기증 날짜가 잡혔다. 기증을 하기로 결정하고 보니 담배와 술을 마시던 나는 괜히 죄책감이 생겨 담배를 끊고 기증 전까지 술을 안 마시게 되었다. 


기증 이틀 전부터 혈액 내 조혈모세포 비중을 높이기 위한 주사를 두 차례 맞고 기증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였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측 담당 직원분께서 기증 절차 내내, 그리고 기증 후에도 내 몸상태를 꼼꼼히 신경 써 주셔서 불안감 없이 기증을 할 수 있었으며, 병원에 입원한 2박 3일 동안에도 간호사님들이 신경 써 주신 덕에 기증 직후 약간의 두통 외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나올 수 있었다. 


이후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측에서 이식 환자의 현황과 나의 몸 상태를 계속 체크해 주셨는데 1년이 지난 후 이식 환자의 몸이 약하여 거부반응이 있어 1차례 더 기증을 요청 드린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미 경험자인 나는 당연히 기증하기로 하였으며, 이때는 이식 환자의 상태를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두번째 기증 후,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이식 환자의 감사 편지를 전해주었고 편지 내용을 보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좋은 일을 한다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식 받은 환자분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운이 좋았고,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얻어 갔다. 조혈모세포 기증이라는 것에 무지했던 내가 갑자기 기증 희망자로 등록하게 되기 위하여 많은 운명적 요소(갑자기 일이 생긴 친구, 간호사님의 의지, 기증희망등록의 필수적 요소였던 초코파이)가 맞아 떨어졌고, 긴 유학이 끝나고 한국에 오자마자 기증이 필요하게 되어 타이밍이 맞았으며, 여자친구와 가족들의 응원 또한 보탬이 되었다. 나의 의지 보다는 그 환자 분이 이식을 받아 건강해지실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필연적인 기증을 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이 꼭 병이 완치되어 건강하게 새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감정을 느껴보았고, 나와 관련이 없는 일에 무관심했던 삶에서 주변 사회에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으며, 사실 당연한 일을 한 것이지만 마음속에 어쩔 수 없이 피어나는 뿌듯함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나의 기증 경험과 절차를 주변 모두에게 알리고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기하고 글솜씨도 없지만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나의 한마디, 혹은 다른 기증자 및 기증 희망자 분들의 한마디로 새로운 기증 희망자가 한 명이라도 더 등록될 수 있다면, 그 행위가 또 소중한 생명을 살려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증자의 약간의 수고는 기증인 필요한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가족에게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희망등록이 대중화되어 각종 혈액암처럼 조혈모세포와 관련된 질병이 지금과 달리 쉽게 기증자를 찾을 수 있는 사회가 곧 오길 기대하며, 사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마음 속에 달콤한 초코파이를 하나씩 간직하고 따뜻한 정(情)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