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기] [대상] 엄마에게 - 박태현 | 작성일 | 2021-08-27 10:28 |
글쓴이 | KMDP | 조회수 | 1,896 |
본문
안녕하세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입니다.
<2021 조혈모세포 기증 인식개선 공모전>에서 수기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박태현 님의 <엄마에게> 입니다.
■ 수기 부문, 대상 수상작
■ 기증자 박태현 (2021년 6월 기증)
■ 작품명 : 엄마에게
■ 작품 설명 : 아들의 조혈모세포 기증에 관한 설명과 아들의 속얘기
To. 엄마에게
안녕 엄마, 엄마한테 편지 쓰는 건 초등학생 이후론 처음인 것 같네. 내가 올해 조혈모세포 기증하고 인식개선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핑계 삼아 엄마한테 편지 한 번 써.
엄마가 그랬지, 난 어릴 때부터 뭐든 내가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고. 그게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지.
내가 2019년에 조혈모세포 기증신청하고 협회에서 연락 올 때까지 엄마한테 한 번도 말 안 했었더라고. 사실 나도 까먹고 있다가 연락 와서 그제야 내가 신청했었단 걸 알았었어. 협회에서 내 유전자랑 적합자가 나타났다고 연락 오고 가족 동의를 꼭 구해야 한다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그제야 엄마아빠한테 거의 통보식으로 얘기했었지, 근데 엄마아빠가 되게 처음엔 반대했었지. 난 그때 남 살리는 좋은 일인데 왜 반대할 거라고 조금 실망했었는데, 엄마아빠도 이런저런 정보 찾아보고 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하겠다고 밀고 나가니까 동의 해줬었지.
근데 내가 얼마 전에 ‘슬기로운 의사생활2’를 봤는데, 거기서 어떤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말 슬픈 일을 당한 에피소드랑 장기기증을 못 받아서 하늘나라로 간 아이 에피소드를 봤었어. 그 에피소드 보는데 그때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더라고. 엄마가 나 임신했을 때, 처음 병원에 갔는데 내가 엄마 뱃속에서 사망했다는 진단받았었다 했잖아. 그때 엄마아빠가 다른 병원 안 가고 그 병원에서 나를 포기했다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었겠지, 그런 일 당했으니까 병원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의료적으로 내가 기증까지 한다니까 더더욱 말리고 싶었겠더라고.
근데 엄마도 엄마로서 가족으로서 나 살리고 싶어서 다른 병원 가서 처음 받았던 사망진단이 잘못됐단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정말 다행이다, 정말 잘 됐다는 그런 생각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엄마아빠가 그런 생각 했던 것처럼, 나한테 기증받은 수혜자분들 가족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엄마아빠가 살려준 귀한 목숨 다른 귀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데 쓰는 거잖아. 심지어 내가 준 세포들이 생착도 잘 돼서 무사히 퇴원도 하셨다고 하더라고. 앞으로 5년 동안은 예후를 지켜봐야 한다곤 하는데 내 세포 받으셨으니까 분명 건강하게 살아가시겠지? 나는 고작 3일 동안만 아프면 되지만 내가 아니라면 환자분은 30년을 아프실 텐데 내가 그 30년을 덜어드린다고 생각하면 되게 별거 아니고 쉬운 일 아닐까??ㅎㅎ
엄마가 기증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까 내가 틈틈이 얘기해준 내용 말고는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잘 몰랐을 거야 그렇지?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병문안도 일절 못 왔으니까 말이야. 내가 사회복지학과고 기증하는 시점의 군인이어서 사회복지학과의 학도로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한 국민의 생명을 귀히 여겨 기증한 이유도 있겠지.
근데 내가 기증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야. 기증신청을 한 것도 내 의지였고, 기증을 희망하게 된 것도 오로지 내 의지니까 그거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증한 거야.
이렇게 말하면 되게 무겁고 힘든 일 한 것 같은데 되게 그렇지도 않아. 나도 처음엔 장기기증에 속한다는 말 듣고 조금 불안했다? 근데 막상 내가 직접 겪어보니까 예전처럼 척추에서 바로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지 조금 긴 헌혈을 한다는 것뿐이더라. 헌혈 좀 길게 했는데 사람 한 명의 목숨을 구했데, 얼마나 쉬워. 물론 엄마가 주사를 좀 무서워하긴 하지만 사람 목숨에 그깟 주삿바늘이 무슨 대수겠어.
그리고 군인 신분으로 기증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었어. 코로나 시국에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병사다 보니까 코디네이터분이랑 연락도 잘 안 되던 날도 있어서 중간중간 좀 고비가 오기도 했었어.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기증 못 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내가 2만분의 1의 확률로 기증을 했는데 아직도 조혈모세포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참 많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 지금 약 30만 명 이상이 기증신청을 했다는데 올해까지 겨우 9,000명밖에 기증 못 했데. 정말 웃기지 않아? 기증하고 싶어도 유전자형이 안 맞아서 기증을 못 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데. 근데 나는 2년도 안 돼서 연락 오고 말이야. 정말 운이 좋지 않아? ㅎㅎ
처음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연락 왔을 때 되게 무덤덤했다? 그냥 ‘아, 내가 기증할 수가 있구나.’ 이 정도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정확한 유전자 검사를 위해 채혈해서 내 혈액 보내고 유전자형이 일치한다는 연락 받았을 때도 그다지 큰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이런저런 정보 찾아보고 비싼 건강검진도 받고 하니까 점점 실감이 나더라. 그러다가 이제 촉진제 주사 처음 맞으려고 병원 가서 주삿바늘 팔에 딱 꽂히니까 그제야 온몸으로 실감이 나더라고 내가 조혈모세포를 기증을 한다는 게.
지금 와서도 정말 고마운 게 하나 있는데 내 기증 일정 거의 다가왔을 때 내 기증 반대 안 한 거야. 기증한다 해서 수혜자가 세포를 죽이기 위해 위험한 방사선 처치를 받았는데 그런 와중에 가족이 반대해서 기증을 못 해서 수혜자가 생을 달리하신 일도 허다하다 하더라고. 그거 생각하면 정말 너그러이 동의해줘서 고마워.
엄마가 모르는 내 입원 라이프 좀 말해주자면 난 되게 재밌었어. 그 큰 대학병원에서 1인실에 나 혼자 누워 있으니까 되게 기분 좋더라고ㅎㅎ 그리고 나 주사 꽂아주시던 간호사님들, 진료 봐주시던 담당 의사 선생님, 내 피 뽑아주신 진단의학과 선생님, 무엇보다 맛있는 간식도 사주시고 내 기증 일정의 99.99%를 도와주셨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코디네이터 선생님들께도 정말 감사하더라. 전부 다 나 좋은 일 한다고 칭찬을 안 아껴주시고 기증 일정에 어려움 없도록 너무 잘 도와주셨어. 그런 분들 덕분에라도 한 번 더 기증하고 싶더라니까 정말.
엄마가 병원에 대해서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인식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 그래도 내가 직접 겪어보니까 엄마가 걱정하던 일은 하나도 안 일어나고 기증하고 일주일도 안돼서 다 회복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추후관리도 해주시니까 정말 감사하더라. 기증한다고 끝이 아니고 피검사도 해서 내 세포 수치 확인도 해주시고 일정 주기마다 전화로 내 건강 걱정도 해주신다고.
만약 재기증 의뢰가 와도 나는 기꺼이 기증할 것 같아. 그 정도로 난 내 인생 통틀어서 제일 좋은 경험이 됐다고 생각해. 그리고 제일 고마운 우리 엄마, 내가 기증한다고 했을 때 또 한 번 믿어주고 내 선택 존중해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가 내 엄마라 정말 고마워.
From. 철부지 없는 아들래미 태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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