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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기] [최우수상] 사람을 살린 성형외과 의사의 수기 - 박진우 작성일 2021-08-27 09:58
글쓴이 KMDP 조회수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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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입니다.


<2021 조혈모세포 기증 인식개선 공모전>에서 수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진우 님의 사람을 살린 성형외과 의사의 수기> 입니다.



■ 수기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 기증자 박진우 (2017년 8월 기증)

■ 작품명 : 사람을 살린 성형외과 의사의 수기

■ 작품 설명 :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에서 치프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시절에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증 후기입니다.


사람을 살린 성형외과 의사의 수기


나는 현재 재건성형을 전공하는 성형외과 의사이면서 어린 시절에는 성형외과 환자였던 다소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생후 100일경 뜨거운 물로 인해 목에 화상을 입었고, 다행히 피부 이식 수술은 잘 되었지만, 흉터로 남은 수술 자국은 남들과는 약간 다른 이유로 사춘기를 힘들게 보내게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흉터에 대한 성형수술을 받게 되면서 내면의 문제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흉터 등의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성형외과 교수로 일하면서 내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것과 같은 흉터 등의 문제, 외상이나 낫지 않는 상처로 인한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기가 의대 진학의 강한 모티브가 되었던 만큼, 의과대학 학생 시절에는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봉사활동도 많이 다녔고, 선배들로부터 혈액은 현대 의학 기술상 어떤 인공 물질로도 완전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헌혈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정기적으로 헌혈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주 다니던 헌혈의 집 한 켠에 붙어있는 조혈모세포 기증과 관련된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주변에서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기 위해서는 전신마취를 하고 골반뼈에 커다란 주사침을 박아서 골수를 채취해야 한다는 다소 겁이 나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에 기증희망등록을 하게 되었다. 의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일 때의 일이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후 성형외과 전문의를 따기 전 마지막 과정인 치프 레지던트 과정에 있을 때 낯선 전화를 한 통 받게 되었다. 다름 아닌 조혈모세포 조직적합성항원 유형(HLA type)이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당시에는, 예전에 기증 희망 등록을 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던데다가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인 여유가 별로 없는 시기였기에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수술과 치프 레지던트의 삶은 매우 고달프다)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나를 아껴주시던 성형외과 교수님 한 분은,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만, 조금만 더 있으면 성형외과 전문의가 될 텐데 네 몸을 좀 더 아껴서 나중에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뜻깊은 일이 되지 않겠느냐’고 만류하시기도 하였다. 게다가 기증 희망 등록할 때와는 달리 처자식까지 있다 보니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망설이기도 하였다. 결국 많은 고민 끝에 기증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기증 과정을 겪어보고 나니 그동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내 직업이 의사라는 사실이 약간 부끄러워지게 되기도 하였다...


기증희망등록을 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조혈모세포 채취를 주로 골반뼈에서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의학 기술도 많이 발전을 했는지 최근에는 대부분 정맥주사를 통해 채취하는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나도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 방식을 통해 기증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골반뼈에서 채취하는 방식보다 기증자의 신체에 대한 부담이 훨씬 적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증 절차는 기증 3일 전부터 하루 1차례씩 과립구 집락 자극인자 (G-CSF) 주사라는 것을 맞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조혈모세포 생성을 촉진하는 주사이기 때문에 우리 몸에 조혈모세포가 많이 존재하는 허리뼈, 골반뼈 등에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으나, 나의 경우에는 별다른 이상 증상은 없어서 기증 하루 전까지 성형외과 치프 레지던트로서 수술에 참여하고 환자들을 돌보다가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근무를 마치고 저녁때쯤 근무하던 병원의 특실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근무지 병원에 바로 입원해서 기증할 수 있도록 조혈모세포 은행협회 코디네이터께서 많은 수고를 해주셨다. 성형외과 환자가 특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호텔과 같이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병실 모습을 종종 보고 그런 곳에서 한 번쯤 지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좋은 병실에 입원을 하게 되니 마치 휴가를 받아 호캉스를 떠나온 것 같은 들뜬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마침내 기증 당일,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기증 절차가 시작되었다. 양 팔에 헌혈 시 사용하는 굵은 주사 바늘을 꽂고 약 4시간 정도 누워있으면 한 쪽 팔에서 혈액이 빠져나가고, 조혈모세포만 채집한 뒤에 나머지 혈액은 반대쪽 팔을 통해 다시 주입해주는 방식이었다. 의대생 시절, 공부하던 대학병원에서 소아혈액암으로 투병중인 환아가 백혈구 수혈이 필요하다는 벽보가 의과대학 게시판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친구들 몇 명과 같이 수업을 빠지고 (의과대학 수업은 다루는 지식의 양이 방대해서 한 시간만 못 들어도 따라가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에 매우 큰 결심을 필요로 했다) 4시간 정도 걸리는 백혈구 헌혈을 하고 온 경험이 있는데, 그때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이른 오후에 기증 절차가 마무리되었고, 기증 후에도 별다른 이상 증상은 없어서 입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기증받은 환자분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은 알 수 없었지만, 현재 상황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조혈모세포 은행협회 코디네이터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기증 당시의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30대 중반의 가장인데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라고 하였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이 나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고 혈액암 완치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가슴 뭉클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게다가 한 가정의 미래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으니...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생각날 때마다 이식받은 환자분의 완치를 위해 기도했다. 


다행히도 경과가 좋아서 이식 후 1년 정도 지났을 때, 이식받은 환자의 아내분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손수 써서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를 통해 보내주셨다. 나는 당시에, 성형외과 전문의를 취득 후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학병원의 임상강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임상강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성형외과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수술들을 직접 집도하면서 연구 활동을 병행하느라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때문에 안타깝지만 그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는 별로 없었다. 한편으로, 임상강사 시절의 초기부터 이렇게 큰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1년 전에 베풀었던 선행이 이런 식으로 행운을 가져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최근 제20회 조혈모세포 기증 감사의 날을 기념하여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후기를 쓰던 중 문득 기증받은 환자분의 근황이 궁금해져서 조혈모세포 은행협회에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기증 당시 기증 후 사후관리를 챙겨주시던 이자영 간호사님께서 연락을 받아주셨다. 사실, 너무 오랜만에 연락을 한 데다가 수년 전 이식을 받은 환자의 근황을 물어본다는 게 쉬운 부탁은 아닐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송구스러울만큼 너무나 정중한 감사의 인사와 환자분의 근황에 대해 자세히 정리된 글을 보내주셨다. 다행스럽게도 환자분은 이식 후 4년이 지난 현재 혈구 수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고마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고 난 뒤,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일을 했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고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으로부터는 ‘이런 생각은 지금까지 지내면서 처음 드는데 네가 존경스럽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사실, 기증 과정을 겪는 동안 대단히 힘든 일을 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저런 칭찬을 듣는 것이 다소 민망하기도 하다. 최근에는 90% 이상의 경우에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 방식이 가능하다고 하니, 입원이 필요하고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는 헌혈을 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의 감수가 필요한 문장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조혈모세포 기증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입장에서 그 가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주로 필요로 하는 백혈병 등 혈액암의 경우에 아직까지도 조혈모세포 이식이 유일한 완치 방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혈연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조직적합성항원 유형이 일치할 확률이 수만 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기증 참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십 수년 전 의과대학 본과 2학년 시절에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서 수업 중 상당히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만큼 중요한 일이다.


기증 후,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희망의 씨앗’ 배지를 보내주었는데, 나는 그 배지를 병원에서 일할 때 가운 옷깃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항상 달아놓고 있다 (근무하는 병원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 찍을 때도 잘 보이게 신경 써서 찍었다, 아래 사진1 참조). 그 의미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조혈모세포 기증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마음속의 큰 자부심으로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 기증이 가능한 상한선인 만 40세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데 만 40세가 되기 전에 나의 조혈모세포 기증이 꼭 필요한 환자를 한 번쯤 더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작은 결심과 약간의 노력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직접 살릴 수 있다는 경험은 직업이 의사인 나로서도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코멘트 : 조혈모세포 기증희망등록은 만 18세부터 만 40세 미만까지 가능하며, 실제 기증은 만 55세까지 가능함을 안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