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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웅이 되는 쉬운 방법>-기증자 오현석 님 작성일 2019-01-04 15:26
글쓴이 KMDP 조회수 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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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을 하게 된 계기
어느 날, 헌혈의 집을 갔더니 조혈모세포 기증 관련 광고가 붙어있었다.

피검사를 할 때 이것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 날은 긴장이 안 풀렸는지 혈류속도가 빨라서 정작 헌혈은 못 했고, 등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따로 피를 뽑았다(보통은 헌혈한 피를 가지고 등록한다고 한다).

헌혈의 집 간호사분이 말씀하시길, 본인이 10여 년 전에 등록을 했는데 연락이 안 온다고 했다.
그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이 등록한 거라 진짜로 기증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약 1년 만에.
그렇게 내가 살면서 제일 잘 한 일 중 하나인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게 되었다.


기증 과정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길 잃은 바이킹처럼 헤매고 있을 무렵,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일단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고, 기증해줄 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당연히 기증해줄 수 있었지만, 가족들은 많이 걱정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

이유 중 하나는 기증 절차에 대한 오해였다.

척추에서 고통스럽게 채취한다든가, 후유증이 심하다든가 하는 오해를 하셨기에 협회에서 받은 자료나 팜플렛 등을 이용해 열심히 설득했다.

또 다른 이유는 안 그래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가 나설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게 도움 요청이 온 것이니 책임질 것이고 손해도 거의 안 본다고 대답했다.

가족의 걱정은 기증이 끝난 지금도 줄지 않았지만, 어쨌든 하지 말라고는 안 하게 되었다.

정밀 검사를 위해 협회를 직접 방문했다.

좀 길을 헤매다가 도착해서 여러 안내를 받았고, 피를 뽑고 혈압 측정 등을 했다. 며칠 뒤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건강검진 날짜와 기증 날짜까지 척척 잡혀서 그대로 기증에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환자분 상태가 적합하지 않아서 두 번 연기가 되었다.

이대로 환자분이 괜찮아지면 좋은 거긴 한데, 살짝 찜찜한 채로 지내다가, 다시 연락이 왔고 이번엔 진짜로 하게 되었다.

기증 약 한 달 전 건강 검진을 받았다.

피검사나 소변검사, CT촬영 등 많이 해 본 검사도 받았고, 심전도 검사도 처음 받았다. 내가 그렇게 건강하게 지내지 않은지라 재검이 뜰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하자 없이 통과했다. 기증 며칠 전부터 촉진제를 매일 병원에 직접 왔다갔다하며 맞았다.

설마 한 팔도 아니고 양팔에 맞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촉진제는 조혈모세포가 혈관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부작용이 좀 있다.

개인차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허리가 계속 쑤시고 잘못 움직이면 몸 전체가 몸살 난 듯 아팠다.

기증 후에는 씻은 듯이 없어졌지만 말이다.

기증 전 날 입원했다. 넓은 1인실에 입원해서 정말 편했고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

협회 직원 분들이 다 친절하듯이 의사나 간호사 모두 친절했다. 협회 직원 분에게 간식도 많이 받았고, 간호사가 와서 정기적으로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고, 의사가 와서 나는 최종 동의서에 사인했다.

드디어 기증 당일이 되었다.

채혈실로 내려가서 양팔에 바늘을 꽂고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혈관이 좋지 않아 피가 나가는 오른팔을 묶고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 했다.

확실히 4시간 이상 이걸 반복하니 확실히 팔이 끊어질 듯 아프고, 지루하기도 했다.

그래도 채취하는 기계가 째깍대는 소리에 맞춰 열심히 잼잼을 하니 예상보다 조금 일찍 끝났고, 간호사도 칭찬해줬다.

혈관 팩에 나에게서 뽑아낸 조혈모세포가 모인 걸 보니 묘하고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증 당일에는 지치긴 했으나, 별 이상 없이 다음 날 퇴원했다.

그렇게 조혈모세포 기증이 끝났고, 내 삶은 기증 전과 차이 없이 굴러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감사패가 왔다.

감사패를 보니 내가 기증을 했다는 실감이 났다.

그 동안 왠지 실감이 안 났었는데 아마 후유증이 안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근육통이 있던 몸도 다음 날 멀쩡했으니 말이다.

기증 후에 확인 차 피검사를 하러 다시 병원에 다녀왔고, 아마 이상이 없을 것이다.

 

기증 후, 마무리
조혈모세포 기증은 확실히 힘들다.

주사바늘에 10번 이상 찔리고, 며칠 동안 근육통에 시달리다 입원하고, 굵은 헌혈바늘에 찔린 채 몇 시간 동안 오른팔을 묶은 채 손을 오므렸다 폈다 반복하는 일은 힘들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행동인 것 치고는 매우 쉽다. 특히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은 헌혈을 자주 하는 사람에겐 고급 헌혈로 여겨질 만큼 쉽다.

친구들에게 기증 사실을 자랑하고, 어떤 카페에 기증 후기를 올렸다.

수고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몇몇 사람들은 나를 대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소인배다.

세상엔 남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거나, 목숨을 희생하거나 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일단 내 안위, 내 가족의 안위를 챙겨야 남을 도울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일도 그냥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 줬을 뿐이다.

예전보다는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자가 많아졌다고 들었다. 건강검진을 할 때도, 처음 촉진제 주사를 맞을 때도 나처럼 기증을 하는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증에 대해 오해를 하거나, 기증에 관심이 없다.

우리 가족도 그랬고, 내 친구들도 거의 다 그랬다. 앞으로 이 글이 더 많이 퍼져서 더 많은 분들이 기증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누구나 사람을 살린 영웅이 되어서 내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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