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쁨이 넘치는 순간> - 황호선님(2014 기증) | 작성일 | 2016-07-11 15:55 |
글쓴이 | KMDP | 조회수 | 8,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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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기
2000년대 중반,
헌혈의 집에서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 캠페인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던 때였는데요.
헌혈을 할때마다, 기증등록을 하려다가, 몇 번 정도 순서를 놓쳤었죠.
주로 퇴근후에 헌혈을 했기 때문에, 헌혈의 집 마감시감까지 여유가 별로 없을 때,
바쁜 마음에 헌혈을 먼저 해버리면, 기증 등록을 위한 채혈을 할수 없다는 이유였지요.
그러다가, 2007년에 지도교수님께서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졸업한지는 9년이나 되었지만, 교수님에게 아무 노력도 해드린 것 없이 보냈다는
후회와 안타까움에그제사야 등록을 한 거예요.
2. 기증
그 후로, 6년이 지났지만, 지난 늦여름 즈음 기증자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처음 왔을때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바로 기증하겠다고 했지요.
마음속으로는 "기증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외치고 있었죠.
부족한 제가 누군가를 위한 선행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더 감사했지요.
그런데, 가족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조건이 있더군요. 그때까지도 그 의미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헌혈을 80번이나 하면서도 (좋아해주지는 않았지만) 반대한 적이 없던 아내가 가장 먼저 반대를 하더군요.
처음으로 커다란 사회적 인식의 장벽을 실감했습니다. 여기에는 아이들에 대한 개인적 사연도 있지요.
건강장애가 있는 둘째 아이를 돌보며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3일간의 입원이 필요한 기증 절차는 분명 거부감이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지 새끼도 못 챙기면서 남 돕겠다고 나대는…” 철부지 아빠였던 것이지요.
그래도, 제가 계속 기증의사를 밝히자, 아내는 온가족이 모여서 동의를 받으면, 자기도 따르겠다고 한걸음 물러서더군요.
그리고, 현직 의사인 친형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기증의 필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동의는 받았습니다만,
친형도 골반뼈 채취방법 말고, 말초혈 채취방법으로 하라는 조건을 달더군요.
일단 친형이 동의를 하니, 걱정하시던 부모님도 쉽게 동의해 주셨습니다.
동의 절차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통과한 것이지요. 이후 기증절차 자체는 일사천리…… 행운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직 살 날이 창창한 젊은 수혜자에게 좀 더 건강한 세포를 주고 싶어서 (40대에 접어든 제 나이가 아쉬웠죠)
운동을 시작하였는데, 덕택에 지금도 운동하는 습관이 유지되고 건강도 더 좋아졌습니다.
기증을 좋게 봐주시는 회사분들께서 도움을 주셔서 기증기간에 휴가처리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보너스 휴가까지 받아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더해졌죠.
촉진제도 회사 보건소에서 주사할 수 있도록 처리해주셔서, 기증전날까지 정상근무를 할 수 있었으며, 통증도 없었습니다.
기증 당일에 채혈시간 5시간은 지루하지 않게 지나갔고, 채집한 조혈모세포 양이 충분하여 한번에 채집도 끝났고
퇴원 후 검사한 혈액수치도 잘 회복된 걸 확인했죠.
한달이 좀 더 지난 후에, 무엇보다도 가장 기다리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식 후 환자분에게 생착이 잘 되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이 넘치는 순간이었습니다.
3. 마무리
조혈모세포 기증은 다른 사람에게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선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다만, 본인의 의지도 확고하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래야, 주변의 부정적 인식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겠죠
다시 생각해봐도 부족한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혜자 분의 밝고 건강한 삶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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