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실천하는 ‘배워서 남 주기’

입력 2023. 07. 12   15:45
업데이트 2023. 07. 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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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중령 육군3사단 혜산진여단
이대로 중령 육군3사단 혜산진여단


미국의 한 사립고등학교의 설립 이념은 라틴어로 ‘논 씨비(Non sibi)’, 영어로는 ‘낫 포 셀프(Not for Self)’다. 학교의 설립자는 지식을 나누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나만을 위하지 않는다’는 설립 이념을 세웠다고 한다.

육군훈련소 교육대장 시절 훈련소장님께서는 ‘Non sibi’를, 또 ‘배워서 남 주자’를 모든 훈련병에게 교육했다. 이것이 나에게도 감동이 되어 나의 위치에서 나만을 위하지 않고 배워서 남 주는 삶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조혈모세포 기증’이라는 첫 번째 ‘배워서 남에게 줄’ 기회가 찾아왔고, 여러 차례의 사전 검사와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2018년 7월 기증을 했다. 기증 후 나는 나를 통해 한 생명을 살렸다는 생각에 그간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희열과 뭉클함을 느끼며 스스로 대견함에 도취해 군생활과 남은 삶을 살아가면서 계속 ‘배워서 남 주기’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수년이 지난 호국보훈의 달. 드디어 나에게 두 번째 ‘배워서 남 줄’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닌 대대 전 장병들과 함께 말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고민 중인 대대장에게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분들을 위해 헌혈증을 기부하자”고 공보정훈장교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3사단 혜산진여단 야성마대대의 헌혈증 333장 기부 캠페인’이 이로써 시작됐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하는 걱정의 마음도 있었지만 우려와 다르게 대대원의 참여의지는 매우 높았고, 1주일 만에 목표치를 달성했다. 여단장님께서도 지갑속 헌혈증을 꺼내 주셨고, 나도 6·25전쟁 73주년인 6월 25일을 맞아 100번째 헌혈을 하며 보태었다. 간부들은 집안 깊숙한 곳에 묵혀있던 헌혈증을 꺼내왔고, 용사들은 고교시절부터 틈틈이 하던 헌혈증까지 흔쾌히 내어 주었다. 개인 사정으로 헌혈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따뜻한 마음을 보태었다. 이렇게 소중한 마음이 모아져 지난달 29일에 국가유공자를 위한 의료기관인 중앙보훈병원에 대대 이름으로 333장의 헌혈증을 백골잔에 담아 기증했다.

이번 기증행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중 가장 값진 것은 우리 대대원이 선배전우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고, 그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우리의 피를 선배전우를 돌보는 데 사용하는 활동에 적극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로 결전태세확립의 의지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기에 대대원과 함께한 두 번째 배워서 남 주기는 그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나의 ‘Non sibi’는 계속될 것이다. 아니, 우리의 ‘Non sibi’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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